Today 2019.04.20

LIVE SCORES

이전으로 다음으로

MLB 컬럼

[이현우의 MLB+] 2019 HOF 특집(1) : 마리아노 리베라

  • 기사입력 2019.01.23 21:00:03   |   최종수정 2019.01.24 17:53:57
  •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마리아노 리베라: 최고의 마무리에서 최초의 만장일치 HOF 입성까지

 

뉴욕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뉴욕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 2019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결과 마리아노 리베라(425표, 100%), 로이 할러데이(363표, 85.4%), 에드가 마르티네즈(363표, 85.4%), 마이크 무시나(326표, 76.7%)가 2019년 새롭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엠스플뉴스>는 4편에 걸쳐 이들의 현역 시절 활약을 다시 조명해보고자 한다.

 

[엠스플뉴스]

 

 #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은 최단 거리가 55km에 불과한 좁은 '지협'으로 연결되어있다. 이름하여 파나마 지협이다. 지협(地峽)이란 육지 양쪽으로 해양이 접근하여 육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진 지형을 말한다. 따라서 지협은 대체로 양쪽 해양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로 중요한 교통로를 이룬다. 운하를 건설할 경우 우회할 때보다 뱃길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파나마 지협도 마찬가지여서 동쪽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카리브해를 연결시키는 파나마 운하가 건설됐다. 1903년 프랑스로부터 파나마 운하 굴착권을 사들인 미국은 당시 파나마를 통치하던 콜롬비아 정부가 운하 건설을 거부하자, 파나마 공화국의 독립을 지원했고 1914년 운하를 완성했다. 이후 미국은 1999년까지 85년간 파나마 운하를 독점적으로 관리해왔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이곳 파나마 공화국의 작은 어촌에서 가난한 어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많은 중·남미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린 시절 리베라가 가장 좋아한 스포츠는 축구였다. 하지만 파나마 운하로 인해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파나마인들은 축구 못지않게 야구도 좋아했다. 특히 리베라의 어린 시절이었던 1970년대 빅리그에는 로드 커류가 뛰고 있었다.

 

1967년 아메리칸리그(AL) 올해의 신인상을 받은 데 이어, 7차례의 타격왕을 수상하는 등 1970년대 빅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였던 커류는 고국인 파나마 아이들에겐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리베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훗날 리베라는 물이 빠진 해변가에서 찢어진 낚시 그물을 뭉쳐 만든 공과 우유곽으로 만든 글러브로 친구들과 함께 캐치볼을 하며 놀았다고 회고했다.

 

과연 그 시절 리베라는 알고 있었을까? 우상이었던 커류(1991년 첫 번째 투표에서 득표율 90.51%)에 이어 파나마 출신으론 두 번째로 그 자신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것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만장일치로 입성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리베라의 고향 파나마 공화국의 지정학적 위치(사진=위키피디아) 리베라의 고향 파나마 공화국의 지정학적 위치(사진=위키피디아)

 

 # 리베라는 만 18세였던 1988년 지역 아마추어 야구팀에서 유격수로 뛰고 있었다. 당시 파나마 지역 양키스 스카우트였던 허브 레이번은 훗날 리베라가 토너먼트에서 뛰는 것을 지켜봤지만 메이저리그 유격수감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년 후 리베라는 그의 야구 인생에 있어 중요한 변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리베라가 속한 지역 아마추어 야구팀의 투수가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부진하자, 지역 야구팀의 감독은 그를 대신해 리베라를 투수로 기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리베라는 투수로서 출전한 첫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호투를 펼쳤다. 해당 경기가 끝나고 2주 만에 리베라는 파나마 시티에 있는 치코 헤론이 운영하는 양키스 육성팀에 스카우트됐다.

 

당시 리베라는 체중이 70kg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투수로서 정식 훈련조차 받지 못한 상황으로 패스트볼 평균구속 역시 85-87마일(137-140km/h)에 머물렀다. 하지만 양키스의 라틴 아메리카 사업 담당 이사로 다시 파나마를 찾은 레이번은 리베라의 운동신경과 부드럽고 힘들이지 않는 투구 동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레이번의 추천을 받아 1990년 2월 18일 양키스는 리베라와 2,500달러에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선수 계약을 맺었다.

 

풀타임 첫해였던 1996년 4월 마리아노 리베라(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풀타임 첫해였던 1996년 4월 마리아노 리베라(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 리베라는 양키스와 계약을 맺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루키리그에 합류했다. 그해 리베라는 루키레벨 걸프 코스트 리그(GCL)에서 22경기 5승 1패 52.0이닝 3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0.17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그해 유일한 선발 등판 경기에서 7이닝을 무피안타로 틀어막으며, 양키스 수뇌부로부터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베라 개인은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향수병에 시달려야 했다. 고향 집에는 전화기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때때로 부모님을 뵙기 위해 파나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리베라는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나날이 좋은 실적을 쌓아가고 있었다. 1992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1992년 리베라는 상위 싱글A로 승급해 10경기에서 5승 3패 59.1이닝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주무기였던 슬라이더의 움직임을 늘리기 위해 손목에 스냅을 주는 시도를 하는 바람에 오른쪽 팔꿈치 척골측부인대(UCL)에 부상을 입고, 그 해 8월 프랭크 조브 박사(1925~2014, 토미 존 수술의 첫 집도자)로부터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브 박사가 한 수술은 토미 존 수술로 알려진 '손상된 인대를 교체하는 수술'이 아니라, 부분 손상된 인대를 살짝 다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술 이후 한동안 리베라의 패스트볼 구속은 급감했고, 양키스는 신생팀인 플로리다와 콜로라도를 위한 확장 드래프트에서 리베라를 보호 선수로 지정하지 않았다.

 

리베라에 대한 양키스의 기대치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 23세라는 유망주로선 다소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술로 인해 더블A 승격이 지체됐을 뿐만 아니라 구속까지 떨어진 리베라는 야구 선수 생활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었다.

 

1996년 양키스의 마무리였던 존 웨틀랜드. 이후 19년간 양키스의 마무리는 단 한 명이었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1996년 양키스의 마무리였던 존 웨틀랜드. 이후 19년간 양키스의 마무리는 단 한 명이었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 1994년 리베라는 느려진 구속에도 불구하고 더블A와 트리플A에서 10승 2패 131.0이닝 평균자책점 3.09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이를 기반으로 만 25세였던 1995시즌 5월 미국 진출 이후 6년 만에 빅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첫 네 번의 등판에서 15이닝 동안 29피안타(4피홈런) 18실점(17자책점)으로 난타를 당하면서 6월 중순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그러자 양키스는 선발진을 보강하기 위해 리베라를 그해 중반 좌완 선발 데이빗 웰스를 데려오기 위한 트레이드 카드 가운데 하나로 놓고 디트로이트와 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트레이드 성사를 앞둔 어느 날 리베라는 평소보다 6마일(9.7km/h)이나 빠른 95-96마일(153-154 km/h)을 던지며, 5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이 보고를 받은 양키스의 단장인 진 마이클은 리베라를 트레이드 카드에서 뺐고, 결국 웰스 트레이드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훗날 리베라는 자신의 알 수 없는 구속 상승과 그로 인한 트레이드 결렬을 신의 은총으로 돌렸다. 7월 5일 빅리그에 복귀한 리베라는 시즌 종료까지 4승 1패 52.0이닝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하며, 이듬해 로스터에서 자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전 시즌의 활약(8승 3패 107.2이닝 130탈삼진 평균자책점 2.09)을 바탕으로 존 웨틀랜드를 밀어내고 주전 마무리를 차지한 1997년, 리베라는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신이 주신 두 번째 선물을 받게 된다. 바로 컷 패스트볼(이하 커터)이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와 투심 패스트볼. 좌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공이 커터, 우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공이 투심이다(영상=팬그래프닷컴)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와 투심 패스트볼. 좌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공이 커터, 우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공이 투심이다(영상=팬그래프닷컴)

 

 # 1997년 6월 리베라는 양키스 더그아웃 앞에서 팀 동료인 라미로 멘도사와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패스트볼이 말을 듣지 않았다. 던지려고 한 방향에서 자꾸 왼쪽으로 휘면서 제구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리베라는 처음에는 멜 스토틀마이어 투수코치와 함께 이런 현상을 없애보려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공의 움직임을 막을 순 없었다.

 

결국 리베라는 저절로 왼쪽으로 휘는 패스트볼의 제구를 잡아보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 단일 구종으로서 역대 최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리베라표 커터의 탄생 배경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전까지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섞어 던지는 선수였던 리베라는 전체 투구의 95% 이상을 포심 패스트볼과 커터, 투심 패스트볼로 던지는 투수로 변모했다.

 

리베라표 커터의 첫 번째 장점은 다른 투수들과는 달리, 포심 패스트볼과 큰 차이가 없는 그립을 잡고 던지기 때문에 구속 역시 포심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포심 구속은 서서히 느려졌음에도 커터 구속은 유지되면서 말년으로 갈수록 더 강해졌고, 포심과 커터의 구속 간섭 현상은 리베라의 노쇠화를 늦추는 데 크게 일조했다.

 

두 번째 장점은 특유의 그립으로 인해 횡회전을 주기 힘듬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중지 힘 덕분에 다른 투수들의 슬라이더 못지않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으로 인해 상대 타자들은 리베라의 커터에 헛스윙을 하거나, 빗맞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리베라의 커터에 '배트 파괴자'란 별명이 붙은 이유 역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로는 잘 알려진 대로다. 리베라는 2013년 만 43세의 나이로 은퇴하기 전까지 17시즌 가운데 2시즌을 제외한 15시즌을 60이닝+3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고, 단 1시즌을 제외한 16시즌을 2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으로 끝마쳤다. 이런 꾸준함은 리베라가 통산 652세이브(역대 1위) 1283.2이닝 평균자책점 2.21이라는 마무리 투수로서 불멸의 기록을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지만 리베라의 위대함은 정규시즌 기록만으론 드러나지 않는다. 리베라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포스트시즌 성적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통산 성적(사진=팬그래프닷컴) 마리아노 리베라의 통산 성적(사진=팬그래프닷컴)

 

 # 리베라의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은 96경기에서 8승 1패 42세이브(3블론) 141.0이닝 110탈삼진 평균자책점 0.70이다. 이는 경기 수, 세이브 수에서 역대 포스트시즌 1위이자, 30이닝 이상 소화한 역대 모든 투수를 통틀어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이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이런 기록이 일반적인 마무리 투수와는 달리, 밥 먹듯이 멀티 이닝을 소화하면서 세워졌다는 것이다.

 

전성기 시절 리베라는 포스트시즌에서 양키스가 위기에 놓일 경우 8회에도 올라오는 경우가 잦았고(통산 PS 42세이브 가운데 31세이브를 멀티이닝을 소화하며 기록했다), 3번을 제외한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이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리베라의 통산 포스트시즌 WPA(Wins Probability Added, 승리 확률 합산)이다.

 

WPA란 타석의 결과에 따른 WE(승리 확률)의 변화를 추적, 합산한 값이다. 즉, 한 선수가 만든 타석에서의 결과가 팀이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을 얼마나 증가시켰는지, 또는 감소시켰는지를 기반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어떤 선수가 중요한 순간에 얼마나 뛰어난 활약을 '자주(누적값)' 펼쳤는지"를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리베라는 통산 포스트시즌 WPA에서 11.69로 전체 1위에 올라있는데, 전체 2위인 커트 실링의 WPA는 4.1에 불과하다. 이런 리베라의 '가을 본능'은 소속팀인 양키스가 리베라의 은퇴 전까지 5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리베라는 정규시즌 성적으로 보나, 포스트시즌 성적으로 보나 이견의 여지가 없는 역대 최강의 마무리였다. 그리고 이렇듯 포지션 내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역대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리베라가 역사상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만장일치로 들어갈 수 있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리베라는 양키스 소속으로 19년을 뛰는 내내 그라운드 안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그라운드 밖에서도 활발한 자선 활동과 겸손한 태도로 동료와 팬뿐만 아니라 미디어 종사자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런 훌륭한 인품은 투표권자들이 마무리라는 포지션 상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리베라에게 표를 던지게 했다.

 

실제로 명예의 전당 투표율은 실력과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 그랬다면 이견의 여지가 없는 역대 최고의 타자인 베이브 루스가 95.13%에 그쳤을 일은 없었을 것이며, 리베라 이전에 가장 득표율이 높았던 켄 그리피 주니어가 99.32%를 받았을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리베라가 만장일치를 받은 것은 실력 외에도 여러 요소가 종합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완벽해 보이는 리베라의 커리어 이면에는 젊은 시절 겪어야 했던 수많은 굴곡이 있었다. 리베라는 그것을 모두 이겨내고 포지션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그라운드 안팎으로도 모범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리베라는 그 공을 자신이 믿는 신과 함께한 팀 동료들에게 돌렸다. 그런 점에서 리베라는, 누구보다도 명예의 전당이라는 곳이 잘 어울리는 선수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 잘봤어요 1
  • 화나네요 0
  • 팬이에요 0
  • 후속기사 원해요 0
    • 새로고침
    • 도움말
      Best 댓글
      공감 투표 비율이 높은 댓글입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공감수가 증가하거나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경우, 예고없이 제외 될 수 있습니다. 레이어 닫기

    news

    더보기

    video

    더보기

    hot 포토

    더보기
    [M+포토] 아이즈원 장원영, '천상 연예인'
    치어리더 김연정, 굴욕없는 전신 수영복샷 '잘록 허리+각선미'
    "컴백 D-4"…트와이스, 신곡 공개 앞두고 '비주얼 대잔치'
    [M+포토] 아이즈원 김채원, '쇼!챔' MC로 맹활약
    [M+포토] 에버글로우 왕이런, 센터의 자리 찾기
    "완벽 꿀벅지"…김희정, 탱크탑+핫팬츠 '서구적인 몸매'
    "쓰앵님의 반전 매력"…김서형, 매끈 각선미+탄탄 바디라인
    '솔로 컴백 임박' 전소미, 봄맞이 일상 공개 '성숙미 물씬'
    [Car&Girl] 레이싱모델 윤희성 '범접할 수 없는 몸매'
    [오·아] "실사판 인어공주" 블랙핑크 지수, 현실여친짤 대방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