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컬럼

[이현우의 MLB+] 2019 HOF 특집(2) : 에드가 마르티네즈

에드가 마르티네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문 지명타자 HOFer

 

에드가 마르티네즈(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에드가 마르티네즈(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 2019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결과 마리아노 리베라(425표, 100%), 로이 할러데이(363표, 85.4%), 에드가 마르티네즈(363표, 85.4%), 마이크 무시나(326표, 76.7%)가 2019년 새롭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엠스플뉴스>는 4편에 걸쳐 이들의 현역 시절 활약을 다시 조명해보고자 한다.

 

[엠스플뉴스]

 

 # "진정한 야구를 계속 지켜나가야 합니다." 2016년 1월, MLB 구단주 모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의장 데이브 몽고메리가 한 말이다. 야구계에 어떤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일까? 사뭇 결연해 보이기까지 한 발언이다. 하지만 몽고메리 의장이 결사적으로 반대한 이 제도가 이웃 리그에 도입된 지는 어느덧 반세기 가까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편 리그는 아직도 이 제도를 '이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로 지명타자(DH, designated hitter) 제도다.

 

지명타자란 수비를 하지 않고 투수 대신 타석에만 들어서는 타자를 말한다. 지명타자 제도를 최초로 고안한 이는 전설적인 감독 겸 구단주 코니 맥이다. 1920년대에 거의 채택될 뻔했던 이 제도는, 순수성 논란에 시달리며 결국 도입이 무산됐다. 그 후 50년이 지나 최악의 투고타저에 시달리던 아메리칸리그가 흥행을 위해 1973시즌부터 도입하면서 지명타자 제도가 시작됐다. 하지만 일단 도입되자, 지명타자 제도는 온갖 반대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아메리칸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한 지 1년 만에 내셔널리그보다 평균 타율이 2푼 가까이 상승하면서, '화끈한 공격야구'란 정체성이 생겼다. 그 덕분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내셔널리그와의 평균 관중수 차이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꽤) 좁힐 수 있었다. 그러자 아메리칸리그의 성공을 지켜본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에서도 1975년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했고, 지명타자 제도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야구계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아예 원년인 1982년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했을 정도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지명타자를 주 포지션으로 하는 선수가 등장한 지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지명타자 자리는 오랫동안 '나이가 들어 수비 실력이 떨어진 선수들'이 거쳐 가는 곳쯤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최초의 지명타자 론 블롬버그(좌)와 올랜도 세페다(우). 둘은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된 1973년 4월 7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개막전에서 지명타자로 나섰다. 1회초 원정팀인 양키스의 블룸버그가 먼저 타석에 들어섬으로써 MLB 최초의 지명타자가 됐다(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최초의 지명타자 론 블롬버그(좌)와 올랜도 세페다(우). 둘은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된 1973년 4월 7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개막전에서 지명타자로 나섰다. 1회초 원정팀인 양키스의 블룸버그가 먼저 타석에 들어섬으로써 MLB 최초의 지명타자가 됐다(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전문 지명타자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말부터다. AP통신에 따르면, 1999년 지명타자들은 평균 404만 달러로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가장 높은 평균 연봉을 받았다. 하지만 전문 지명타자란 포지션의 전성기는 얼마 가지 않았다. 2016년 은퇴한 데이빗 오티즈를 마지막으로 전문 지명타자의 명맥은 빠르게 끊기는 추세다. 그 증거로 2017시즌 지명타자로 출전한 타자 46명 가운데 100경기 이상 나선 타자는 8명뿐이다. 

 

이들이 뛴 8개 팀을 제외한 나머지 7개 팀은 최소 3명에서 최대 7명에 달하는 타자를 지명타자 자리에 번갈아 기용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명타자들이 갖는 유일한 장점이었던 타격마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2017시즌 지명타자로 출전한 선수들은 평균 타율 .248 출루율 .320 장타율 .434 wRC+(조정 득점창출력, 100이 평균) 99를 기록했다. 이는 리그 평균(.255 .324 .426)에 비해 장타율만 조금 앞설 뿐, 나머지 기록은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렇게 된 원인은 최근 3년간 급증한 홈런수와도 관련이 깊다. 2017년 메이저리그에는 6,105개의 홈런이 나왔다. 이는 MLB 역사상 단일시즌 가장 많은 숫자다. 2018년에는 5,585홈런이 나왔다. 이는 MLB 역사상 단일시즌 기준으로 네 번째로 많은 숫자다. 이제 웬만한 팀에는 한 시즌에 20홈런 이상 기록하는 타자가 적어도 서너 명은 포진되어 있다. 그렇게 되자 더이상 타격만 잘하는 타자는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수비 포지션이 없는 지명타자는 말할 것도 없다.

 

어느새 메이저리그에서 지명타자 자리는 '상대 선발투수에 맞게 매치업을 만들거나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방편'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통산 성적(자료=베이스볼레퍼런스)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통산 성적(자료=베이스볼레퍼런스)

 

 # 마르티네즈는 통산 18시즌 동안 2055경기에 출전해 2247안타 309홈런 1261타점 타율 .312 출루율 .418 장타율 .515 wRC+ 147 f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 65.5승을 기록했다. 두 차례 아메리칸리그 타율 1위에 올랐고, 올스타에 7번, 실버슬러거에 5번 선정됐다. 18년간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만 뛰었기 때문에 마르티네즈는 대부분 타격 지표에서 시애틀 역대 1위에 올라있다.마르티네즈의 등번호 11번이 시애틀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이유다.

 

통산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르티네즈의 누적 성적은 다른 명예의 전당 입성자들에 비해 살짝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 그에게는 압도적인 비율 성적이 있다. 마르티네즈의 통산 wRC+(조정득점창출력) 147은 8000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 가운데 역대 20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같은 타석을 기준으로 타율 3할-출루율 4할-장타율 5할 이상을 기록 중인 타자는 마르티네즈를 포함해 MLB 역사상 12명뿐이다.

 

하지만 6번째 명예의 전당 투표였던 2015년 마르티네즈의 득표율은 27%대에 머물렀다. 이후 4년이 지나 투표 자격 마지막해였던 2019년이 돼서야 마르티네즈는 425표 가운데 363표(85.4%)를 받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마르티네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늦어진 이유는 하나다. 그가 커리어 대부분(1491경기)을 지명타자로 뛰었기 때문이다. 마르티네즈의 포지션이 지명타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보단 빨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을 것이다.

 

지명타자 제도를 두고 벌어지는 현지의 논란은 당연히 국내 야구팬들에겐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KBO리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KBO리그는 단일리그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의 양대리그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라이벌 의식도 체감하기 어렵다. 한편, 이는 지명타자에 대한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마르티네즈의 HOF 투표율 변화 추이(자료=BBWAA) 마르티네즈의 HOF 투표율 변화 추이(자료=BBWAA)

 

 # 내셔널리그와 NPB의 센트럴리그같이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리그를 응원하는 팬들은 지명타자를 '반쪽짜리 선수'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정적인 시선은 내셔널리그에서 오래 뛴 감독 및 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하물며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가진 NL 담당 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HOF 투표권을 지닌 전미 야구기자협회(BBWAA)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명타자 도입 초기부터 야구를 본 이들이다.

 

그중 1명인 조지 벡시의 얘기를 들어보자. <야구의 역사>의 저자이자 뉴욕 타임스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그는 "야구의 아버지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살아 돌아와서 지명타자를 본다면'이라고 상황을 가정한 뒤 다음과 같이 말었다. "필드에서는 수비도 안 하면서 몇 회 만에 가끔씩 나와서 방망이만 휘두르고 사라지는 저 주제넘은 인간은 뭐지?" 이것이 야구 전통주의자(1939년생인 벡시는 브루클린 시다저스의 팬이었다)들이 지명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올해로 벌써 45년이 지난 일이지만, 벡시에 따르면 지명타자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까지도 곪아 있는, 완치되지 않는 상처"다. 전문 지명타자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힘든 이유다. 이에 대해 마르티네즈는 2015년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 중 내셔널리그 담당은 내 모습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 또는, 고급 야구 통계 지표)가 나를 도와줄 시기가 오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마르티네즈가 마지막 10번째 투표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 기준선인 득표율 75%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대로 최근 2년간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느새 만 56세가 된 마르티네즈는 베테랑 위원회에 의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까지 또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마르티네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어쩌면 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전문 지명타자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문 지명타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있었던 짧은 전성기를 지나 사라져가는 포지션이 되고 있다. 마르티네즈에 이어 명예의 전당급 성적을 쌓은 전문 지명타자로는 데이빗 오티즈가 있지만, 오티즈는 경기력 향상물질(PED)을 복용했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오티즈는 메이저리그가 본격적으로 스테로이드 계열의 의약품을 금지약물로 지정하고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처벌 기준을 마련하기 전인 2003년, '비공개'와 '처벌 금지'를 전제로 약물 복용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사례다. 그 사실이 폭로된 것이기 때문에 오티즈는 피해자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오티즈는 그전까진 앞장서서 물 복용 사실이 적발된 선수를 비판해왔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을 제외한 MLB 팬들이 오티즈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투표 기간 내에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커다란 변화가 없는 이상, 입성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는 로저 클레멘스와 배리 본즈를 제외한 나머지 금지약물 복용자들의 득표율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티즈 이후에는 마르티네즈에 범접하는 전문 지명타자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마르티네즈는 현역 시절 뛰어난 성적을 거뒀음에도 켄 그리피 주니어와 알렉스 로드리게스, 스즈키 이치로 등 화려한 팀 동료들에게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전성기가 하필 '스테로이드 시대'를 관통한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가 발전하고, 전문 지명타자가 사라진 시대가 되자 그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났다. 흥미롭게도 이런 일련 과정은 만 27세가 되어서야 주전을 차지하고, 뛰어난 참을성을 바탕으로 최고로 거듭난 그의 현역 시절을 연상케 한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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